▲디앨 이앤씨가 2024년도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를 새롭게 꾸린다. 새 이사회에는 오너일가도, 안전보건 전문가도, 건설업 출신 인물도 없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캡처=뉴스드림
▲디앨 이앤씨가 2024년도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를 새롭게 꾸린다. 새 이사회에는 오너일가도, 안전보건 전문가도, 건설업 출신 인물도 없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캡처=뉴스드림

"이 자리를 빌려 유족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고. 이를 계기로 임직원들과 함께, 협력사들과 협심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현장을 운영하는 회사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

이해욱 DL그룹(디엘그룹, 구 대림산업그룹) 회장은 2023년 12월 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동자 사망사고 산업재해 청문회에 불려가 위와 같이 공언했다. DL이앤씨(디엘이앤씨, 구 대림산업)는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단일 건설사 중 가장 많은 사망자(8명)를 낸 업체다. 이에 따라 여론이 악화되자 그간 국회 출석을 회피하던 이 회장이 결국 카메라 앞에 나와 고개를 숙이고, 국민들에게 안전경영을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DL이앤씨의 2024년도 정기주주총회에 상정된 의안을 보면 이 회장의 사과와 약속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DL이앤씨는 오는 21일 서울 종로구 소재 디타워에서 정기주총을 열고 '사내이사 마창민·윤현식 선임의 건', '사외이사 노환용·인소영·남궁주현 선임의 건' 등 안건을 처리할 계획이다. 당초 업계에선 DL이앤씨가 지난해 중대재해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빚은 만큼, 현재 미등기임원인 이 회장이 등기임원이 돼 경영 전면에 나서서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이거나, 최소한 지난 연말 CSO(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선임된 이종배 담당임원을 사내이사로 선임해 이사회에 진입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사내이사 후보 명단에는 CEO로 재선임되는 마창민 대표이사, 경영지원본부 소속 윤현식 실장의 이름만 포함됐다. 사외이사로 새롭게 선임되는 인물들도 전(前) LG전자 사장, 환경공학과 교수, 법조인 등 안전관리 분야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는 최근 업계 흐름을 역행하는 행보로 여겨진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각 사업본부별로 안전보건책임자로 부사장급(DL이앤씨 실장급) 임원을 임명해 각 부서의 안전을 책임지게 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 차관을 지낸 정병석 사외이사가 이사회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대건설은 전무급 CSO(안전관리본부장)를 사내이사로 선임해 이사회에 참여하게 하고, 그 아래로 안전관리실장·안전사업관리실장 등을 둬 안전관리 역량 강화에 힘쓰는 모습이다. GS건설은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를 계기로 사령탑에 오른 오너 4세인 허윤홍 최고경영자 사장을 올해 정기주총을 통해 사내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기업의 안전·보건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고 승인하는 권한은 이사회에게 있다. 이사회 구성원 중 안전·보건 분야 전문가가 없다면 자연스럽게 해당 기업의 안전관리 역량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최근 사회적 여론상 오너경영인이 이사회에 참여해 대내외에 안전관리 책임 의지를 피력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 상장 5대 건설사 중 이사회 내 오너일가나 안전·보건 분야 전문가가 없는 업체는 DL이앤씨와 대우건설뿐인데, 특히 DL이앤씨의 경우에는 이번 정기주총으로 새롭게 구성되는 이사회 구성원 중 '건설인 출신'이 단 한 명도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현장을 운영하는 회사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는 이 회장의 공언이 허언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약속은 실천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실천하지 않는 약속은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정기주총 시즌에선 이뤄지지 않았지만, 빠른 시일 내 DL이앤씨가 이해욱 회장, CSO 등을 이사회에 참여하게 해 국민들에게 약속한 '안전경영' 이행에 진정성 있는 모습를 보여주길 바란다. [뉴스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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