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공기업 민영화에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HMM 매각에 변수가 생긴 모양새다.
지난 4일 이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할 때 국회와 협의하거나 국민 여론을 수렴하도록 하는 제도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공기업 민영화를 행정부에서 너무 쉽게 일방적으로 결정하게 되면 국민 여론과 배치돼 정치 쟁점으로 부각되는 경우가 있다"며 "주요 공공시설을 민간에 매각해 민영화하는 것을 국민이 불안해하기 때문에 국회 협의나 여론 수렴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업계와 증권가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HMM 매각 작업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앞서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10월 1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해수부가 부산으로 이전하기 전 올해 안에 HMM 매각과 관련한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다. (매각과 관련해) 산업은행과 곧 논의할 예정이다. HMM을 글로벌 선사로 키울 수 있는 방향과 HMM이 수출입 해상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유구조나 매각이 정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HMM 매각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통령과 주무부처 장관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 셈이다.
민영화 절차 강화… HMM 매각 사업에 장애물 될까
국내 최대 정기선사인 HMM은 국가 보유 지분이 70% 이상(2025년 6월 반기보고서 기준 한국산업은행 36.02%, 한국해양진흥공사 35.67%)이다. 사실상 공적 선사 역할을 수행 중이다.
최근 정부는 산업은행의 공적자금 건전성을 확보하고 사업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HMM 민영화(민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인수를 희망하는 유력 기업은 포스코그룹이다. 포스코는 "인수 의향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지난 9월 삼일PwC·보스턴컨설팅그룹 등 외부 자문단을 꾸려 HMM 인수를 전제로 사업성 검토를 진행하는 등 전격적인 인수 의사를 비치고 있다.
2023년에는 하림그룹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자금 조달 우려와 조건 이견의 문제로 무산된 사례도 있다. 포스코는 하림에 비해 자금력과 신용도가 탄탄해 국가경제 측면에서도 긍정적이고, 포스코 자체적으로도 HMM 인수 시 연간 3조원 가량의 해상운송비도 절감할 수 있어 이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HMM 민간 인수는 정부 지분에 대한 매각이기 때문에 국가계약법에 따라 공개경쟁 입찰로 진행돼야 한다. 포스코의 단독 입찰로 끝나지 않고 다른 기업과의 인수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공식적으로 인수 입장을 밝힌 기업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과거 인수를 포기했던 하림그룹과 한진해운을 가졌던 한진그룹 등이 후보로 언급된다.
다만, 현재 해운업계에서는 HMM 민영화를 반대하고 있다. 한국해운협회는 지난 10월 13일 포스코그룹 장인화 회장에게 'HMM 인수 검토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건의서를 보냈다. 협회는 포스코의 해운 산업 전문성을 신뢰하기 어렵고, (HMM 인수 이후) 경영이 악화되면 우리나라 해운산업 전반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협회는 포스코가 과거 거양해운을 설립해 해운업에 진출했다가 한진해운에 매각한 사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자기화물 운송 중심의 사업 구조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포스코그룹 물류계열사 포스코플로우가 2022년 해운업계와 '해운업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MOU를 체결한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협회 측은 "해운산업이 철강산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과 상생하기 위해서는 그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며 "HMM은 특정 기업의 전용선사가 아닌 한국해양진흥공사가 관리하는 '국민 선사' 형태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가운데 정치권까지 공기업 민영화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공기업을 민영화할 때 국회 논의나 여론 수렴을 거치도록 제도가 수정된다면 한국해운협회 등 업계 설득 작업이 인수 추진에 앞서 진행해야 할 전망이다. 그럼 해수부의 HMM의 부산 이전과 매각 사업 추진 로드맵과는 별개로 HMM의 민간 인수 추진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HMM 부산행-지방선거도 민영화에 부정적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을 치를 당시 "부산을 해양수도로 만들겠다"며 해양수산부와 HMM 본사를 비롯한 해운 기업들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HMM 내부 구성원들은 이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국내 해운선사들이 서울에 밀집해 있어 글로벌 바이어들도 수도권에 집중해 있으며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고객사 관계자들을 만나기에도 비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수도권에 이미 터전을 마련한 직원들이 부산행을 반길 리도 없어 보인다.
때문에 IB업계에서는 민간 인수 추진 전 HMM이 부산으로 이전돼 사업성이 떨어진다면 지분 매각의 또다른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아울러 정치권 일각에서는 오는 2026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가 HMM 매각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영남 지역을 공략할 핵심 선거 공약으로 HMM 부산 이전을 앞세우기 위해 HMM 민영화 작업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출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단기간에 HMM의 민간 인수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앞으로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민영화와 관련한 정부의 제도 개편과 해수부가 연내 예고한 HMM의 부산 이전·매각 관련 로드맵 발표가 선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