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계 사모펀드 EQT파트너스가 국내 대표 ERP업체인 더존비즈온을 품었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EQT는 특수목적법인(SPC) 도로니쿰을 통해 더존비즈온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인 김용우 회장이 보유한 지분 23.2%, 신한금융그룹 계열사들이 보유한 지분 14.4% 등 더존비즈온 지분 34.8%(보통주 988만 주, 우선주 108만 주)를 매입하는 내용의 계약을 지난 6일 체결했다. 거래 대금은 1주당 12만 원, 총 1조3158억 원에 이른다. 자기주식을 제외하면 EQT의 지분율 37.6%까지 올라간다.

EQT는 얼마 전 직장인 명함관리·커리어 플랫폼인 '리멤버'를 인수한 바 있다. 리멤버 운영사인 리멤버앤컴퍼니는 약 500만 명의 직장인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다. 우리나라 직장인 중 절반 이상이 리멤버 앱 가입자라는 통계가 있다. 가입자들이 리멤버가 등록한 5억 장의 명함 데이터에는 직장명, 직장 주소는 물론, 개인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 등 구체적인 개인정보가 기입돼 있다. 현재 리멤버앤컴퍼니는 이 같은 데이터를 활용해 여러 자문·시장·여론조사 자회사들까지 운영 중이다.

이어 EQT는 국내 기업들의 내부 경영 데이터를 가진 더존비즈온의 경영권까지 얻게 된 것이다. 더존비즈온의 ERP·세무회계 솔루션은 매출·원가·급여·세금·거래처 정보 등 기업들의 민감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더존비즈온이 운영하는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 '위하고'(WEHAGO)에는 전자결재, 인사, 그룹웨어 등 기능들도 통합돼 있다. 회계·세무사무소, 국세청, 기업간 데이터가 더존비즈온의 네트워크 안에서 순환하고 있다.

더존비즈온과 리멤버앤컴퍼니의 경영권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건 우리나라 개인-조직의 양방향 민감 정보를 통합 수집·분석할 수 있는 잠재적 역량을 갖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양사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주체는 EQT다. 국내 고용·노무·회계·세무·기업 네트워크 정보가 하나의 외국계 사모펀드의 포트폴리오 안에 집중된 전례 없는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이는 어쩌면 국가 데이터 주권과 국내 산업 인프라 통제권에 경고등이 켜진 건지도 모른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이미 한 차례 경고음이 울린 바 있다. 지난달 14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리멤버의 개인정보는 단순한 명함 정보가 아니라 직장, 직책, 연락처, 이메일 등 기업 내 인적 네트워크의 핵심 데이터다. 이 정보가 해외 기업에 팔리면 명함에 담긴 우리나라 국민들의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의 우려가 높다"며 "그러나 마케팅 활용이나 해외 이전 가능성에 대한 감독체계가 미비하다. M&A 단계에서 개인정보 보호 리스크를 사전 심사하는 등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더존비즈온 인수는 이 같은 우려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더존비즈온은 국내 세무·회계업은 물론, 전(全)산업 인프라의 일부이자 기업 내부 정보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업체다. 해외 자본의 더존비즈온 지배는 데이터 인프라의 소유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여기에 우리나라 직장인 정보(리멤버)와의 결합·분석까지 현실화된다면 국내 클라우드 생태계 내 민감 정보들이 국외로 유출·확산될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EQT의 더존비즈온 인수 계약은 아직 딜 클로징이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승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인허가 등 절차를 밟아야 한다. 관계당국에 제언한다. 이번 거래 심사의 초점을 국가 데이터 주권 문제에 맞출 필요가 있다. 국내 직장인·기업의 정보가 국경 바깥으로 흘러나갈 수 있는 일이다. 외국 자본의 투자가 일시적으로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데이터 통제권이 넘어가는 순간 산업 생태계의 뿌리는 돌이킬 수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보의 소유권이 바뀌면 정보의 흐름도 바뀐다는 점을 반드시 감안해 이번 M&A에 대해 심사해야 할 것이다. [뉴스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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