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해진공 안병길 "HMM은 공기업 아니다"…하지만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이 공기업 민영화 절차를 강화하는 제도 수립을 촉구했다. 정부가 독단적으로 공적 자본을 민영화할 때 국민 불안감이 조성된다는 이유에서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HMM 민간 매각 작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상당했다.
이튿날 기자는 '공기업 민영화 제동 건 이재명, HMM 매각에 영향 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안병길 해양진흥공사(해진공) 사장에게 물었다.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절차를 강화할 방침인데, HMM 매각에도 영향이 있으리라고 보느냐'는 간단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안 사장은 "HMM은 공기업이 아닙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간 해진공이 HMM 매각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음을 감안하면, 그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굳이 논란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취지의 대답으로 느껴졌다.
HMM은 공기업이 아니라는 안 사장의 답변은 분명히 맞다. 공기업이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사회 공공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 경영하는 기업'이다. 민간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HMM은 엄밀히 따지면 공기업이 아니다.
하지만 HMM을 마냥 민간 기업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2016년 해운업 구조조정 시기 경영난에 시달리던 HMM을 산업은행 자금 지원을 통해 국가와 국민이 구제했다. 채권단 관리 하에 경영 정상화를 이뤄낸 지금 HMM은 현재 국가 보유 지분이 70% 이상(지난 6월 말 기준 산업은행 36.02%·한국해양진흥공사 35.67%)인 국내 최대 정기선사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HMM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이유도 HMM이 가진 공적 성격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부산 유세 현장에서 "HMM은 민간기업이나 국민이 주인인 공기업의 자회사"라며 "국민이 원한다면 부산 이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민이 원하면 본사를 이전할 수 있는 회사를 과연 민간 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세계 시장에서도 HMM을 단순히 민간기업으로 여기지 않는다. 미국 연방해사위원회는 2024년 7월 HMM을 '국영선사'로 지정했다. 미국 해운법은 국영선사를 '정부가 직간접으로 지분을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회사'로 정의하고 있다. HMM을 대한민국 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공적 속성을 띄고 있는 해운업체라고 판단한 거다. 현재까지도 미국은 HMM을 한국의 공식 국영선사로 관리·규제하고 있다.
공기업은 아니지만 '민영화' 대상?
HMM 매각 작업은 꽤 오랜 시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있던 이슈다. 정부는 공적 자금을 회수하고, 사업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명분 하에 HMM 민영화를 지속 추진 중이다. 포스코그룹이라는 인수 희망 업체도 등장했다(관련 기사 : 공기업 민영화 제동 건 이재명, HMM 매각에 영향 줄까).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연금공단이 대주주로 있는 포스코가 HMM을 인수할 경우 공적 자금을 회수한 이후에도 어느 정도의 지배력을 HMM에 간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포스코도 철강 산업과 해운 물류 사업을 연계해 연 3조의 물류비를 절약 가능할 전망이다.
다만, 해운업계 내 우려의 목소리는 크다. 대표적으로 한국해운협회는 포스코의 HMM 인수를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상태다. 협회는 포스코가 해운업에 뛰어드는 것이 법률에 저촉될 뿐더러 해운사업에 대한 전문성도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운업계의 이 같은 스탠스는 HMM 대주주 중 하나인 해진공이 그동안 HMM 매각에 소극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해운협회가 공식적으로 HMM의 민간 인수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세한 입장은 아직 내부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협회에서는 HMM이 민영화될 경우 HMM의 공적 성격이 훼손될 걸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HMM 민영화와 관련해 공식 입장이 있는 건 아니다"라며 "그러나 에너지 공급망 등 산업 필수재의 안정적인 수송망 역할을 하는 게 해운업인 만큼, HMM이 공공성을 띄고 있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앞서 거론한 지난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의 발언과 궤를 나란히 한다. 그리고 현 정부 역시 HMM을 사실상 공기업이라고 보고 부산 이전, 매각 등 작업을 추진 중인 상황이다.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9월 정부 출범 100일 기자 간담회에서 "HMM의 지배구조 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해운선사 문제가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적 측면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정부에서도 HMM의 공적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HMM이라는 기업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정의할 순 없다. 하지만 정부 뿐 아니라 인수전에 뛰어들 기업들도 HMM이 가진 공공성을 인지하고 국익을 고려해 신중하게 계획을 수립해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 HMM이 "공기업은 아니다"라는 말은 사실이지만, HMM이 공기업의 성격을 띤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뉴스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