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톡톡] 김승연 회장의 애플 사랑…'이재용은 서운해'
"아잇, 근데 왜 이렇게 아이폰이 많아요?"
지난달 30일 서울 코엑스 '지포스 게이밍 페스티벌'(GGF)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던진 농담입니다. 행사장 곳곳을 비추던 관객들의 스마트폰 중 상당수가 아이폰이었던 탓이죠. 이 회장은 GGF 직전 젠슨 황 엔비디아(NVIDIA) CEO, 정의선 현대자동그룹 회장과의 '치맥 회동' 자리에서도 한 시민이 아이폰으로 셀카를 요청하자 "갤럭시를 가져오셔야죠"라며 장난으로 촬영을 거부하기도 했는데요.
올해 7월 한국갤럽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18~29세 스마트폰 이용자 중 60%가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0대의 경우에는 갤럭시 53%, 아이폰 43%로 점유율 격차가 무척 적었고요. 특히 40대의 아이폰 사용률이 전년 대비 12%p 증가한 31%로 집계됐습니다. '갤럭시 충성 고객', '갤럭시 세대'라 불리던 층까지 애플로 이동하고 있는 겁니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이 삼성전자에서 애플로 넘어가고 있다고 해석할 만한 통계입니다.
이런 시장 환경 가운데 삼성전자를 진두지휘하는 이 회장으로선 아이폰을 들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섭섭함을 느낄 수밖에 없겠죠. 그런 이 회장을 서운하게 할 소식이 또 하나 있습니다.
5일 한화그룹에 따르면 김승연 회장은 지난 4일 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의 2025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축하하면서 선수단과 스태프 총 60명에게 오렌지색 휴대폰을 선물했습니다. 이날 김 회장이 한화 이글스 선수단에게 전달한 스마트폰은 최근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17 프로 시리즈인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한화 이글스를 상징하는 오렌지색에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한화만의 팀워크'라는 의미를 담아 준비한 선물이라는 게 한화그룹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오렌지색이라는 이유로 아이폰을 선물한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 김 회장은 '야구광 회장님'으로 유명하죠. 한화그룹과 김 회장은 이글스가 성적을 내거나 팀 분위기가 반등할 때마다 선수단에게 크고작은 선물을 증정해왔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그 선물 리스트 중 대부분이 애플 제품이라는 겁니다.
한화 이글스는 신인 선수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하고자 2022년부터 '웰컴 패키지'를 새로운 선수들에게 제공 중인데요. 해당 패키지에는 애플의 '아이패드'가 담겨 있습니다. 2023년 7월에는 18년 만에 8연승을 기록하자 선수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애플워치'를 선물했고요. 올해 7월 김 회장이 1군 선수와 스태프 80명을 위해 직접 마련한 선물에도 애플 제품이 포함됐습니다. 당시 김 회장은 "인고의 시간 끝에 이글스가 가장 높이 날고 있다. 후반기엔 더 높은 비상으로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자"는 친필 응원 카드와 함께 애플의 무선 헤드폰 '에어팟 맥스'를 선물했었죠. 김 회장의 '애플 사랑'은 결코 일회성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삼성그룹 오너일가와 한화그룹 오너일가는 무척 친분이 두텁습니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화그룹이 '김승연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일가가 가까우니 합병에 부정적인 보고서는 쓰지 말라'고 한화투자증권에 요구했다는 주장(주진형 전 의원,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제기됐을 정도로 말이죠. 실제로 김승연 회장은 경영상 큰 일이 있을 때마다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찾아 조언을 구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아들인 이재용 회장이 김승연 회장을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자주 주선했다고 하는데요.
오너일가간 사이도 돈독하고, 삼성전자와 애플의 제품 라인업이 상당수 겹침에도 김 회장이 한화 이글스 선수단을 위해 택한 선물은 삼성전자 제품이 아니라 애플 제품이었습니다. 이유는 뭘까요?
선물의 가치는 받는 사람의 필요와 기쁨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값비싸고 좋은 물건이라도 상대방이 원하는 게 아니라면 선물의 가치는 퇴색될 수밖에 없죠. 받는 사람이 기뻐야 주는 사람의 기쁨도 큰 법입니다. 한화 이글스 선수단은 한때 '노인정' 소리를 들을 정도로 평균 연령대가 높은 편이었지만, 최근에는 김서현·노시환·문동주·문현빈 등 20대 초반 선수들이 주축이 되면서 젊은 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한국갤럽 자료에서 보듯, 요즘 20대는 갤럭시보다 아이폰을 선호합니다. 김 회장과 한화그룹은 선물을 받는 선수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른 게 아닐까요.
김승연 회장과 한화그룹의 선물 선택은 시대 감각이 반영된 실용적 결정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이재용 회장과 삼성전자는 아마 서운하면서도 복잡한 심정일 겁니다. 삼성의 오랜 우군인 한화마저 아이폰을 단체 선물로 택한 장면은 갤럭시 브랜드의 상징성과 경쟁력에 대해 미묘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 질문에 답을 하는 게 이 회장과 삼성의 다음 과제가 될 것 같네요. [뉴스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