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빚투도 투자"…금융당국은 '투기 조장위원회'인가
李 핵심 공약 코스피 5000 매몰·금융 안정성 망각 정치권도 목소리 높여, 국힘 "권대영 사과·책임도" 규제 형평성 지적도…부동산은 규제·주식은 투자 정부 '금융 안정성 관리·소비자 보호' 책무 다해야
'혁신적 금융, 포용적 금융, 신뢰받는 금융' 이는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금융위원회(금융위)가 내세우고 있는 비전이다. 그러나 최근 당국 고위 관료가 스스로 이 약속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지난 4일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빚투도 레버리지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권 부위원장의 발언은 정부의 '코스피 5000시대 도약'이라는 시장 부양 목표에만 매몰된 결과이자 금융 안정성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망각한 태도로 비춰진다.
정부 고위직 관료의 입에서 혼선을 줄 수 있는 메시지가 나오자 정치권에서 비판 성명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특히 정부가 고위험 투기적 수단(빚투)을 사실상 용인하고 청년·서민들의 금융 리스크를 외면한 무책임한 인식이라는 강도 높은 지적이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성명을 내고 "주식시장이 어떤 자산보다 외부 변수에 취약한 구조로 돼 있다"며 "유동성 위기나 글로벌 경기 침체로 빚으로 투자한 청년과 서민은 한순간에 삶의 기반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빚투를 권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권 부위원장은 경솔한 발언에 사과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권 부위원장을 질타했다.
이러한 비판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 중 또 하나는 금융당국 전체의 모순적인 잣대 때문이다. 정부는 같은 '빚'이라도 부동산 대출은 투기 수단으로, 규제 대상으로 규정한 반면 주식은 투자 대상이라며 장려하는 듯한 이중적인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는 자산별 규제의 형평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실제로 정부는 부동산 투기 수요, 가계부채 증가를 막고자 대출 한도를 축소시키고 갭투자를 차단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강력한 10·15 부동산 대책을 냈다.
그 결과, 대책 발표 이후 규제지역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70%에서 40%로 줄여 국민들의 현금 부담이 커졌으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2년간 실거주 의무를 부과해 갭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봉쇄하기도 했다.
이는 곧 부동산 시장에서 억눌린 가계의 금융 리스크, 투기적 유동성을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주식시장으로 떠넘기는 무책임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당국이 한 손으로는 빚을 틀어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빚을 부추기는 모순적인 정책은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는 셈이다.
권대영 부위원장은 같은 자리에서 "적정한 수준에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감내 가능한 수준의 주식 투자가 필요하다"고 투자자들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권 부위원장이 언급한 '적정한 수준',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는 표현 역시 모호하다.
개인의 위험 수준, 재무 상황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일률적인 조언은 현실적이지 않다. 정부 관료의 이 발언은 투자자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기보다 향후 문제가 될 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려는 면피성 발언으로 들릴 여지가 크다.
이미 많은 청년·서민 투자자들은 패닉바잉(가격에 관계없이 과도하게 사들이는 행위), FOMO(기회를 놓칠까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심리 현상)에 휩쓸려 무리하게 빚을 내며 주식시장에 뛰어든 상황이다. 이처럼 빚투가 만연한 현실에서 반대매매 추이도 충격적인 결과로 드러났다.
지난달 24일 하루에만 1만4877건의 강제 청산이 발생했고 10월 중 네 차례나 1만건을 넘는 청산 폭탄이 터졌다. 이는 빚을 내고 투자한 수만명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빚더미에 앉았다는 의미다. 권 부위원장이 말한 '감내 가능한 수준'을 이들에게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권 부위원장은 "부동산, 예금, 시가총액이 좋은 종목 열 종목을 투자해서 10년간 수익률을 비교하니까 주식시장이 제일 나았다"며 10년, 20년 이렇게 놓고 보면 주식시장이 제일 낫다"라며 장기 투자를 투자자들에게 권유했다.
이러한 발언도 비합리적인 낙관론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시가총액이 좋은 종목 열 종목만을 선별해 말한 것은 생존자 편향 오류(성공한 사례나 결과만 보고 실패한 사례를 무시하여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는 논리)에 매몰된 결과다. 이는 평균을 웃도는 대다수 종목의 수익, 투자 실패 경험을 외면한 채 주식 시장 전체가 우위에 있는 듯한 통계적 왜곡을 시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전선에 있는 금융당국 전문가가 과거 수익률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경고를 누락한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이는 빚을 낸 투자자들에게 '언젠가는 결국 오를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을 심어주는 부적절한 언사다.
빚을 내고 투자하는 대다수 서민과 청년들은 이미 높은 이자 비용, 반대매매 위험 등의 이유로 단기 차익 실현을 목표로 한다. 단기 유동성 위험에 처한 투자자들에게 막연한 장기 투자 성공 사례를 내세우는 것은 투기적 열풍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
정부의 역할은 특정 시장의 투기를 조장하는 근거 없는 낙관론자가 아니라 금융 안정성 관리자이자 소비자 보호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데 있다.
금융당국이 주식시장에서 장기 투자를 홍보하기에 앞서 빚으로 투자한 청년·서민 투자자들이 마주한 반대매매, 파산 위험 등의 현실적인 위험들을 먼저 경고해야 한다. 이러한 경고, 관리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들이 강조하고 있는 장기 투자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밖에 없다.
나아가 부동산 시장에선 극단적인 규제를 가하면서 주식시장에선 빚투를 옹호하는 듯한 논리적인 모순을 없애야 한다. 이와 관련해 국민이 제기하는 의구심에 명확히 답하고 자산별 규제의 일관성을 확보해야만 정부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위는 국민의 자산 보호, 리스크 관리 등에 집중할 때 비로소 '신뢰받는 금융'이라는 비전을 실현할 수 있다. [뉴스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