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1지구 조합, 현대건설이 보낸 공문에 뿔난 까닭

현대건설 "마감재 가이드라인 삭제해 달라"…조합원들 "도대체 왜?"

2025-11-19     박근홍 기자

현대건설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성수전략정비구역 제1주택정비형 재개발정비사업조합(성수1지구 조합) 조합원들의 공분을 산 모양새다. 최근 조합에서 입찰지침(案)을 변경하자 현대건설이 이에 대한 회신 공문을 보냈는데, 해당 공문에 조합이 제시한 마감재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어렵다는 내용이 포함돼서다. 조합원들 사이에선 저가 마감재를 사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지난 13일 '입찰지침(시공자 선정계획서) 변경에 대한 의견 회신'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이한우 대표이사 명의로 성수1지구 조합에 발송했다. 이번 공문은 조합이 공개한 입찰지침안에 대한 회신이다. 현재 조합은 유찰을 막고 건설사간 경쟁입찰을 유도하기 위해 입찰 희망 업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입찰지침 변경 및 재입찰 작업을 추진 중이다(관련 기사: 성수1지구 조합, 시공사 재입찰 나선다…"입찰지침 변경"). 

현대건설은 해당 공문을 통해 ▲공사비 포함 항목 내역 및 관련 도서 제공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 제한과 책임준공 조항 추가 완화 ▲추가 이주비 제안 시 시공자 책임 조달 의무 추가 ▲조합 제시 마감재 기준 통일 ▲조합 제시 마감재 단서 조항 삭제 등을 새 입찰지침에 반영해 달라고 조합 측에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5년 11월 13일 현대건설이 성수1지구 조합에 보낸 공문.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번에 문제가 된 마감재에 대한 내용이다=뉴스드림

성수1지구 조합원들이 현대건설에 불만을 품게 된 이유는 '조합 제시 마감재 단서 조항 삭제' 항목이다.

앞서 조합은 현대건설 등 입찰 희망 건설사들에게 보낸 입찰지침 변경안에서 '주요 마감 기준은 최소 기준 가이드이며, 입찰 참여 시공자는 각 사(社)의 특화를 반영해 가이드 및 이외의 사항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알린 바 있다. 그러면서 '단, 입찰자가 제시하는 마감 및 시설 설치 기준은 발주자가 제시한 마감 및 시설 설치 기준보다 상위 스펙이여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마감자재를 자유롭게 제시·사용해도 좋으나, 조합이 제시한 최소한의 마감재 가이드라인보다 수준이 낮은 자재는 불허한다는 내용의 단순한 조건이다.

하지만 현대건설 측은 앞선 공문에서 '최고급 주거 구현을 위한 상품 특화 제안을 위해 시공사 선정계획서 설계도서 등 서류 중 마감재 단서 조항을 삭제해주길 바란다. 또한 아파트 공용부 마감기준의 일부 조정을 통해 각 시공자의 장점을 살린 최고의 대한 상품이 제안될 수 있도록 부탁한다'면서 해당 단서를 삭제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성수1지구 조합원들 사이에선 현대건설의 행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팽배한 것으로 전해진다. 발주자(조합)가 제시한 최소 가이드라인보다 상위 스펙의 마감재를 입찰자(건설사)가 제시해야 한다는 조건은 여러 정비사업장에서 통용되고 있는 조항이어서다. 실제로 지난 9월 현대건설이 수주한 압구정2구역 재건축사업에도 해당 단서가 적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한 조합원은 "현대건설이 문제를 제기한 마감재 스펙 단서는 압구정2구역 조합의 입찰지침에도 포함돼 있는 조항이다. 압구정2구역에서는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던 현대건설이 왜 성수1지구에선 똑같은 단서를 삭제해 달라고 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며 "조합이 제시한 마감재보다 더 품질이 낮은 저가 마감재를 사용하려는 포석을 두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성수1지구 조합 측이 제시한 입찰지침(안)에서 마감재에 대한 내용 일부 발췌=뉴스드림

아울러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선 현대건설의 이 같은 요청이 조합 내부 구성원간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성수1지구 조합은 마감재 논란으로 한 차례 홍역을 겪었다. 현 조합 집행부에 반대하고 있는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조합장이 마감재 기준 일부를 단독으로 변경(이탈리아산 세라믹→해외산 엔지니어드 스톤)해 입찰안내서에 담음으로써 불법 이익을 챙기려 했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9월 조합장을 비리 혐의로 고발했다. 당시 비대위 측은 조합 집행부가 특정 건설사(GS건설)와 사전 결탁해 이 같은 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관련 기사: 성수1지구 조합원, GS건설·조합장 고발…"고급 한우 접대" 의혹 제기).

이 가운데 현대건설의 이번 공문으로 인해 또다시 성수1지구 조합에서 마감재 문제를 둘러싼 내홍이 일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비대위 측은 현대건설의 마감재 단서 조항 삭제 요청에 대해 "한정된 공사비를 갖고 조합원들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줄 수 있게, 향후에 아파트 가격을 높일 수 있는 곳에 더 좋은 마감재를 투입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공용부에 최고급 타일을 붙일 게 아니라 아파트 내부 마감재나 조경이나 외관 등에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하겠다는 내용"이라며 "마감재를 제한하기보다는 자유로운 대안 특화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 사항"이라고 현대건설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대부분의 조합원들, 특히 비대위가 아닌 현 집행부를 지지하는 조합원들 사이에선 비대위의 이 같은 행태를 꼬집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조합원은 "조합장의 마감재 문제를 지적했던 비대위가 현대건설의 마감재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건설사 편을 들고 있다"며 "상위 스펙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해 달라는 건설사의 요청을 조합원들 위한 제안이라고 해석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수1지구 조합 집행부는 비대위가 현대건설과 손잡고 판을 뒤흔들고 있는 게 아니냐며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관련 기사: "비대위 때문에 사업 지연"…성수1지구, 조합 내부 우려·불안↑).

조합의 한 관계자는 "조합원의 이득과는 정반대로 조합의 절차를 무시한 특정 건설사를 옹호하기 위해 다른 경쟁사를 비방하는 비대위의 행태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들의 진정한 목적이 사업을 진행하려는 것인지 망치려는 것인지 의심된다"며 "비대위의 이중적인 행태에 조합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대위의 계속되는 사업 방해와 특정 건설사의 무리한 요구에도 굴하지 않겠다. 조합원들의 염원대로 사업을 신속히 진행하기 위해 남은 입찰 절차를 원칙대로 완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드림]